백 년 전 그 배에 탔던 사람들 — 정연두의 〈상상곡〉과 김영하의 『검은 꽃』
정연두 작가의 <상상곡>을 보았다.
열대지방의 식물인 듯한 이미지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붉은 색, 연두색, 초록색의 선명한 색으로 만들어진 <상상곡>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상상곡>을 본 후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읽었다.
직관적으로 마주한 미술작품을 본 후 그 당시의 구체적인 이야기들과 사람들을 소설속에서 만났다.
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었다.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언어
1905년,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을 코앞에 두고 휘청이던 그 해. 영국 기선 일포드 호는 제물포항을 떠나 태평양을 가로질러 멕시코로 향했다. 배에 탄 사람은 1,033명. 신부와 무당, 몰락한 양반과 황족, 심지어 내시까지 뒤섞인 이 이질적인 무리는 좋은 일자리와 새로운 삶을 약속받았지만, 실제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애니깽) 농장이었다.
같은 사건을 두 예술가가 전혀 다른 언어로 다시 불러냈다. 소설가 김영하는 2003년 『검은 꽃』이라는 장편으로, 설치미술가 정연두는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운드 설치 작품 〈상상곡〉으로. 하나는 문장으로, 하나는 소리로. 하나는 허구의 인물들을 촘촘히 엮어 서사를 완성했고, 하나는 관람객의 몸을 직접 그 자리에 세워 목소리를 듣게 만들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백 년 전의 이주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다시 도착하는지가 보인다.
김영하, 『검은 꽃』 —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를 채우는 상상력
김영하는 스스로 이 소재에 이끌린 이유를 밝힌 적이 있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매료되어 왔고, 1905년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 밀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의 자료를 뒤지기 시작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검은 꽃』은 을사늑약 이후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떠난 한인들이 계약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4년간 여러 에네켄 농장에 흩어져 가혹한 대우와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역사를 뼈대로 삼는다.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빚 때문에 농장에 남은 이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메리다 같은 도시로 흩어졌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돌았다. 이어 멕시코 혁명의 혼란 속에서 이웃 나라 과테말라의 군사정변에 휘말린 한인들이 참전했다가, 그중 한 사람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까지 세우지만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대부분 스러지고 만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여백, 즉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밀림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고 죽었는지를 소설은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다.
흥미로운 건 문체다. 도시적이고 퇴폐적인 인물들을 즐겨 그리던 김영하가 이 무거운 역사를, 역사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쾌한 문체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듣는다. 비극을 비극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이 소설을 오래 곱씹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다.
정연두, 〈상상곡〉 — 백 년 뒤의 목소리로 백 년 전을 되비추다
정연두의 〈상상곡〉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백년 여행기》에서 처음 공개된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전시 제목 자체가 이 역사를 가리킨다. '백년 여행기'란 1905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40여 일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도착한, 그 백 년 전 한인 이주를 의미한다.
작품의 형태부터 예사롭지 않다. 〈상상곡〉은 초지향성 스피커와 서브우퍼, 앰프, 흡음재 조형물, 와이어 등으로 구성된 사운드 설치로, 여러 크기의 오브제가 가변적으로 배치된다. 전시 공간 천장에는 멕시코의 열대식물을 형상화한 붉은 오브제가 매달려 있는데, 관람객이 그 아래에 서면 초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지금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여러 국적 외국인들의 다종다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목소리들은 백 년 전 멕시코로 이주했던 한인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기서 정연두의 방법론이 드러난다. 그는 백 년 전 이주민의 목소리를 재연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빌려온다. 시간의 방향을 뒤집는 셈이다. 과거가 현재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낯선 이방인의 자리에 서 봄으로써 백 년 전 에네켄 농장으로 향했던 조선인들의 처지를 몸으로 되짚게 만든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외부의 다중 세계를 상상해 볼 것을 관람객에게 권한다.
이 작품이 속한 전시의 출발점도 곱씹을 만하다. 약 200년 전 멕시코가 원산지였던 백년초 씨앗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밀려와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는 이주 설화가, 2022년 제주도에 머물던 작가에게 한국을 떠나 멕시코에 닿았던 한인들의 여정을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식물의 이주와 사람의 이주가 겹쳐지는 순간, 역사는 하나의 은유로 다시 태어난다.
소설과 설치미술 사이 —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두 작품은 같은 역사적 뿌리에서 출발하지만 독자(관람객)에게 요구하는 태도가 정반대에 가깝다.
『검은 꽃』은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한다. 페이지를 넘기며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선택과 실패를 따라가고, 결국 밀림 속에서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 문장까지 지켜봐야 한다. 소설은 감정을 서서히 축적시키는 매체다. 우리는 활자를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도록 훈련받는다.
〈상상곡〉은 정반대다. 관람객은 붉은 오브제 아래 몸을 세우는 그 순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에 즉각적으로 노출된다. 시간을 들여 서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리라는 물리적 감각을 통해 순간적으로 타인의 자리에 '놓이는' 경험을 한다. 김영하가 문장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정연두는 청각과 공간을 통해 신체적 공감을 촉발한다.
그런데도 두 작품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같다. 바로 '이름 없는 이주자'에게 얼굴과 목소리를 돌려주는 일이다. 역사책에는 '1,033명'이라는 숫자로만 남은 사람들에게, 김영하는 허구의 인물과 서사를, 정연두는 오늘을 살아가는 실제 이주민의 육성을 빌려준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백 년 전 배를 탔던 그들은, 그리고 오늘 이 땅에 도착한 낯선 얼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삶을 견디고 있을까.
도슨트의 자리에
전시장에서 〈상상곡〉을 마주하면 선명한 색깔의 모양을 한 작품이 이런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는 이야기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 이야기를 기대, 상상하지 않았던 전시에 대한 새로운 사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알 수 없는 무거움을 안고 전시장을 나오게 된다.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즐겁거나 행복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내가 느끼지 못 하는 느낌과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말이다.
경남도립미술관엔서 현재 진행중인 정연두 작가의 전시 '알루미늄 오이-정연두'가 열리는 동안에는 나의 머릿속에는 이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 기억들은 후에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 내 삶의 선택지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게 분명하다.
결국 두 작품을 나란히 놓는다는 것은, 이주라는 사건이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두 겹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백 년 전 제물포를 떠난 배와, 오늘도 어딘가에서 낯선 땅에 도착하고 있을 누군가의 발걸음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거리가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